어느 덧 3번째, 3월호 발간에 부쳐

“3월이다. 미세먼지와 강추위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양자택일을 강요했던 겨울을 지나온 것인지 아닌지 여전히 혼돈스러운 나날이지만 어쨌든 3월이다. 그간 은 월간이라는 이름에 무색하고 무정기적 발행을 일삼았는데, 그래도 3월호는 3번이나 내고 있다. 숫자 3이야말로 사회학이 가장 애착하는 숫자 중에 하나임을 상기하면, 이 기연을 놀라워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차하게 변명하자면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과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집중하느라 을 내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 사과와 감사의 말씀부터 전하고 싶다.”

2 0 1 2 0 5 1 . 6 (2부)

“아이돌 가수와 팬이 함께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영세하게 시작한 아이돌일수록 첫 一位에서의 눈물이 뜨거운 것이다. 지난 고생의 시간이 순간 회고되면서 그들도 울고 응원하러 온 팬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1위를 거머쥐는 순간 유의미한 것으로 정립되는 어떤 아이돌의 역사는 팬들도 함께 만들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울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그 스테이지에 있는 자들만이 아니다. 그들의 모습은 전송되어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것이 더욱 중요한데, 그럼으로써 더 대규모의 공명을 이끌어내고 더 큰 동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음악이 주는 감동이란 단순히 소리의 문제도 아니고 감상자가 자의적으로 음악과 연결시켜둔 과거의 기억 같은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 감상이란 대규모의 전투이며 승패의 문제이다. “

올림픽, 세 개의 팀

“스포츠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그렇다기 보단 사회가 스포츠를 바꾼다는 것이 지론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우리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그 무엇들이 지속 되고 있음과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았다. 올림픽은 또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또 다른 우리 사회의 단면이 드러날 것이다. 그 무대를 통해 Team KIM이 보여준 수평적 의사소통과 협력의 정신이 반복되길 바란다. 메달을 앞세운 성공을 위해 희생 당하는 선수가 없기를 바란다. 모두가 함께 노력하여 일군 결과에 만족하고 또 기뻐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기 원한다. 그런 변화에는 사회를 알고자 하고 또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평창에서부터 국경 ‘부드럽게 하기’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의 참가와 남북한 단일팀 구성이 급작스레 타결되면서 ‘평화’올림픽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남북 올림픽 선수단의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남북 대치의 오랜 현장이었던 강원도에서 펼쳐진 평화의 움직임은 세계평화라는 올림픽의 정신을 새삼스레, 하지만 감동적으로 구현했다. 선수단과 함께 방남한 고위급 인사들과 응원단은 국내외의 주목을 한껏 받으며 올림픽 이후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렸다. 답방한 대북 특사단이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거두면서 기대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 글은 평창에서와 같이 부드러워진 국경이 어떻게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관한 이론적 논의들을 살펴보고 유럽 연합과 대만, 그리고 개성공단 등 현실에서 구현된 사례를 이에 비추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다시 금강지 앞에 선 마음으로

“이렇게 해서 나는 사회학과 대학원에 도착하게 됐다. 그리고 요즘, 그러니까 내가 학부 생활을 하면서 그다지 애정도 자랑스러움도 갖지 못했고 꽤 오랫동안 도망치듯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던 학과의 대학원 연구실을 드나드는 요즘, 나는 다시 금강지 앞에 선 마음이 든다. 스스로 조금 놀랍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에게 사회학이란 떠나고 싶고, 그것이 닿지 않는 곳에 나의 존재와 의미를 세우고 싶은 어떤 것이었는데, 그곳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곳들에서 마주친 금강지들에 이끌려 그들이 나를 찾아온 ‘바닷길을 거꾸로 잡고’ 떠나 먼 길을 돌아오다보니 어느 순간 사회학이 또 다른 금강지가 되어 내 앞에 서서, 돌아온 나에게 또다시 ‘바닷길을 거꾸로 잡고’ 출발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꿈: 사회혁신의 유토피아와 그 불만

“이 질문이 던져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사회혁신이 주창하는 자신의 모습, 즉 세계의 일부이면서 자신을 포함하고 있는 세계를 거부하는 체계의 모순성 때문이다. 세계의 재생산이 아닌 변혁을 목표하는 체계는 자신을 재생산할 수 없다면, 그런 체계를 자임하는 것처럼 보이는 희망제작소와 서울혁신파크의 모습은 의아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주어진 사물의 질서를 관리하고 통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체계와, 그러한 행정체계가 담지하는 공공성의 한계를 비판하고 그 외부를 드러내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제도화된 혁신’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양자가 함께한다고 할 때, 행정/운동, 혹은 통치/저항이라는 맞짝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사회혁신이 헤게모니적인 사회변화의 방식이 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가 사라지거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형될 때, 비판이 맞이하게 될 운명이란 어떤 것인가? 요컨대 혁신이라는 포스트-운동에서 진보란 무엇인가? 무엇이 진보하는가? 곧 진보의 주어는 무엇인가?”

간만에, 9월호 발간에 부쳐

월간 틀의 편집위원회와 필진들, 그리고 그 외에 우리를 지켜봐주시는 독자들이 언어를 통해 현실을 제각기 그려내고 나누는 것을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언어로 포착하기에는 아연한 현실들 앞에서 우리는 발간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쉰 끝에 또다시 도달한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쓰기를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언어가 현실을 무참하게 비껴가고 허무하게 실패한다 할지라도 실패 끝에 더 나은 실패가 찾아올 것을 지향하면서 우리는 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실패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편집위원과 필진 뿐만 아니라 독자 여러분 모두이다. 이것은 감사의 말이자 다짐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

나는 진정성이 결여된 관계와 그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 영화가 내놓는 이토록 어정쩡한 답에서 동시대를 지배하는 쿨한 관계의 풍경을 본다. 앞서 시리즈 팬덤의 조건으로 등장인물들의 가벼운 관계성과 소통 방식에 대한 내면화를 언급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 유별난 시리즈의 정조는 타자와의 관계나 타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 진정성이 외면되고 있는 현실의 사회적 반영이 아닐까. 영화 속 영웅들은 아군의 생존이 위협받고 우주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도 유머와 농담을 끝끝내 밀고 나가며 그들의 유사-가족 공동체를 지켜낼 수 있지만(그리고 그것이 여타의 수퍼히어로들과 구별되는 이 시리즈만의 미덕이지만), 현실의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성별, 인종, 계급, 종교, 성적 지향, 장애유무라는 수많은 차이 속에서 서로 연대하며 살기 위해 ‘미운 정’ 같은 주관적 환상이나 표현되지 않는 관심(혹은 결과적인 무관심)이란 조건은 필요치 않다. 그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아에 대한 성찰이다.

여성성이라는 환상, 남성성이라는 증상: 한국 군대와 페미니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시민은 민주주의적 자치를 통치의 기본질서로 하는 특정한 정치공동체에서 그 공동체가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완전하고도 평등하게 향유하는 개별 구성원”이라고 한다면, 군대는 시민권이 중단되는 영역이 아니라 한국에서 유일하게 시민권을 집단적으로 발급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것은 군대 안에서 차별받거나 혹은 징집으로부터 애초부터 배제되는 존재들, 즉 동성애자, 여성, 장애인과 같은 존재들이 한국사회 일반에서도 차별받고 배제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해진다. 또한 군대에서 남성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자신이 여성적이거나 동성애자임을 부인하는 통과의례를 거친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한국에서 ‘일등시민’으로 취급받는 존재는 군복무를 마친, ‘건강한’, 성인 남성인 것이다. 군대가 외견상 ‘시민권이 중단되는 영역’으로 보이는 것은, 그곳이 이 사회의 ‘시민’을 생산하기 위한 공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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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시 쯤 되어서 일을 마치고 화장실로 가기 위해 아울렛의 잘 닦여진 로비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저 편 벽에 마운트된 대형 모니터에서 뉴스 갈무리가 나오고 있었다. 검은색 세단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나오는 헌법재판관의 머리에 분홍색 헤어롤 두 개가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 두 개의 헤어롤이 내가 그 날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처음 듣는 그 순간 본 것이었다.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잠시 동안 디지털 단지 사이를 멈춤 없이 쏘다녔다. 마침내 나의  좁고 어두운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할 때 드디어 퇴근한 사람들이 오늘의 아이템을 건지기 위하여 슬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제 본 것과 똑같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사람들은 줄지어 나와 나의 반대편에서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