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틀 11월호, 창간호 발간에 부쳐

새 잡지의 이름은 “월간 틀”이다. 첫 호로서 11월호를 발간한다.

우리는 이 잡지, 웹진의 성공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고 있지는 않다. 다만 사회학과 대학원의 학생들조차도 글을 쓸 기회, 서로의 글을 볼 기회가 없어 웹진을 생각한 것이 기획의 첫 출발이 되었다. 이러한 기획은 논의 속에서 대학원 내의 말과 글의 활성화 뿐만 아니라 그 바깥으로 개방되고 또 상호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도록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실천은 공식 원우논집 “소통과 전망”을 이어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월간 틀”이 “소통과 전망”을 대체하려는 것은 아니다. “소통과 전망”이 성취하고 있는 수준과 깊이는 우리 웹진에 들이고, 들여야 할 공보다 훨씬 더 큰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월간 틀”의 편집위원들은 우리의 시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더 가볍고 빠르고 단순한 틀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데 동의했다. “월간 틀”은 그러한 틀이다.

대학원 내부 투표 끝에 정해진 잡지의 이름 “틀”이 어떠한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편집위원들 내에서도 합의된 바는 없다. 다만 그러한 다양함을 동시에 얽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틀이라는 설명 정도는, 비록 다소 진부하지만, 가능하다. 틀이라는 이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의미를 열어놓으면서도 이에 대한 고찰과 의미부여를 수행하기 위해서 11월호는 ‘틀 짓기’를 작은 특집기획으로 가져간다. 문병준의 “새 틀(A New Frame)”은 틀에 대한 무조건적인 회피 그리고 종속을 번갈아가며 오가던 중에 가졌던 경험들을 통해 내용과 형식의 이분법이라는 상식에서 빠져나오며 새 틀 짓기를 새로운 실천의 형태로 제시하려 한다. 박혜조는 “꿈틀꿈틀”에서 문병준이 새로운 틀과 형식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며, 틀의 억압성에만 집중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관점들만을 생산한다면 집단이 공유하는 틀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그에 역효과들이 뒤따를 것이라고 논한다. 박혜조는 동일한 틀 안에서의 반복 과정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들을 담지하는 변화들이 가능하며 그러한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어 틀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일상에 대한 다양한 감각과 그 감각들의 조직임을 말한다.

월간 틀에도 고정된 코너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사회학과 대학원 원우들이 현 시점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돌아보며 그 안에서의 사회학의 의미, 자신과 사회학 사이의 관계 등을 성찰하고 공유하는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피터 L. 버거의 책 Adventures of an Accidental Sociologist의 한국어판 제목에서 땄다. 첫 호에서는 석사과정의 김채연권오재가 자신들의 역사, 자신들의 사회학을 소개한다. 그러한 개인사들을 여기에서 짧게 요약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다. 독자께서 직접 확인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생존의 재미”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들을 담으려고 하는 것이다. 생존이라는 단어는 헬조선에서의 각자도생이라는 특수한 현실 상황(그런데 과연 특수한가?)을 특수하게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많은 행위들은 원래  언제나 거의 생존과 관계된 것이다. 11월호 “생존의 재미”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의 학부생들이 참여로 쓰여졌다. 염주민의 “부들부들, 치즈 한 장”은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생활고와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불로서의 팁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내적 갈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유현의 “코끼리 뱃속에서”에서는 중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가르치는 자와 학생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해서 성찰하며 두 공간이 혹시 연속된 공간은 아닌지, 그래서 사실은 중학교나 대학교- 라기 보다는 계속된 방치됨을 겪어야만 하는 연속적인 공간 속을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오독, 오독]은 문학, 연극, 영화, 미술, 음악에 이르는 모든 문화적 대상들 혹은 문화상품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범주에 속하는 것들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들을 모을 것이다. 단단한 외피를 지니고 있는 그것들을 깨물고 씹어서 배어나오는 것을 자유롭게 음미할 것이다. 사회학자는 결코 이미 완결되어 있는 대상들을 해부하고 내재적으로 해석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사회 현실이라는 준거를 갖고서 작업하는 사회학자들의 창조적 오독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정당하다. 곽귀병은 “아, 지옥에는 귀여운 것들이 가득해”에서 웹툰 “우바우”에 대한 독해를 시도한다. 곽귀병은 왜 지옥이라고 불리는 현실 속에 귀여운 것들은 가득한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는 귀여움으로 가득한 지옥인 현 “우바우”의 반대편에 진정한 낙원 “뽀로로”를 대치시키며 그 현격한 불일치와 모순의 감각을 마비적으로 중화시키는 귀여움의 기능에 대해서 고찰한다. 윤혜수는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1996)” 속에서 90년대 한국의 도시풍경을 읽어낸다. 이는 기존의 많은 영화분석 혹은 영화평론과는 달리 영화가 담아내는 공간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윤혜수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도시풍경과 우리가 지금 관찰하는 도시풍경을 비교하며 공적공간, 특히 상업적 공간과 거주지인 사적공간 사이에서 그 변화 정도가 차이가 있음을 밝히며, 이것이 어떻게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위의 양식과 태도의 변화와 이어지는지를 고찰한다.

기본적으로는 대학원 웹진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소통과 전망”의 미덕을 이어받아 여기에 [졸업 논문을 소개합니다(이하 졸.논.소. 정식명칭도 졸.논.소.)] 코너를 개설한다. 개인적인 의미부여와 소회가 어떠하든, 그것이 자기의 삶에서 어떠한 물건이 되든, 대학원생에게 있어서 학위논문은 가장 큰 것이다. 그러나 조정하여 학술지에 기고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은근히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힘든 작업물이 좀 더 의미있을 수 있게끔 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원우들 사이의 말과 글이 더욱 많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학위논문 리뷰의 장을 만들어낸다. 11월호에서는 문병준이 박주현의 석사학위논문 ‘소박함에의 열망 – 계간지 킨포크와 킨포크 문화를 중심으로’에 대한 리뷰를 싣는다. 문병준은 ‘소박함에의 열망’ 연구가 가지고 있는 대상과 방법론의 참신성에 주목하며 박주현이 수행한 킨포크 문화와 실천의 구조분석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킨포크를 의미부여의 기술로 이해하고 이것이 한국의 20-30대(이른바 청년세대)의 실천 일반에 대해 갖는 함의를 논한다.

첫머리에서 말했지만 우리의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결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웹진은 거대한 기획과 거대한 노력 대신 원우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말과 글에 대한 작고 내면적이지만 선명한 욕구들이 모이기만 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가벼운 말걸기에 가볍게 응답해주시기를 기대한다.

월간틀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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